문화원 활동
한국인의 마음이 담긴 얼굴, ‘탈’
- 게시일202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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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마음이 담긴 얼굴, ‘탈’
한국의 정서는 흔히 슬픔의 기운이 역력한 ‘한’으로 일컬어져 왔다. 하지만 K-POP, K-Film과 Drama 등을 통해 한국문화의 역동적 힘이 새롭게 부각되면서 ‘한’과는 대비되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찬 ‘흥’의 정서가 주목받고 있다. 한국인에 대한 가장 오랜 역사적 기록(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도 담겨 있듯, 그 민족적 정체성이 처음 형성되었던 시기부터, 한국인들은 삶 속에서 늘 노래와 춤을 즐기는, 유쾌한 문화의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한국인의 ‘흥’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이 바로 ‘탈춤’이다. ‘탈춤’은 가면을 뜻하는 순우리말 ‘탈’(tal)과 무용을 뜻하는 한국어 ‘춤’(chum)이 결합된 단어로서, 춤(무용)과 연극, 음악 등의 요소가 결합된 한국 전통의 종합 공연예술 장르를 의미한다. 세계 곳곳의 가면극들과 같이, 탈춤 또한 악운을 쫓고, 농경·어로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례적 의미를 포함한다.
탈춤에는 이에 더해 한국문화 특유의 해학적 요소가 가득 담겨 있다. 탈춤은 평민들이 즐기는 공연으로, 당시 신분제 사회 구조의 부조리함에 대한 풍자와 조롱, 권력 이면의 이중성에 대한 적나라한 폭로 등을 통해 해학으로서 일상의 고통을 해소하는 장이 되었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없는 열린 마당에서 연희자(공연자)들은 적극적으로 관객들의 동조와 야유를 이끌어 내며, 함께 공연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갈등과 대립의 이야기는 파국으로 흐르지 않는다. 끝에서 등장인물들은 모두 어울려 춤을 추며 화해로서 이야기를 맺음한다. 나아가 연희자들에 관객들까지 어울리면서 현장의 모두가 함께 즐기는 놀이로 이어지곤 한다.
UNESCO 무형문화유산위원회는 바로 이와 같은 특성에 주목, 탈춤이 강조하고 있는 보편적 평등의 가치와 사회 신분제에 대한 비판은 현재도 여전히 의미를 갖고 있는 주제라는 점을 높이 평가하며, ‘한국의 탈춤(Talchum, Mask Dance Drama in the Republic of Korea)’을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inscribe)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30점의 ‘탈’ 중, ‘방상시’ 탈을 제외한 29점은 모두 ‘탈춤’에서 사용되는 ‘탈’의 형상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이들 독특한 한국 탈의 조형적 특성에는 대한민국의 22번째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 ‘탈춤’에 담겨 있는 한국인의 해학적 정서가 그대로 담겨 있다.
일부 벽사와 기원을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한국 탈들이 그려내는 것은 신화 속 신적 존재도, 역사나 전설 속 영웅도 아니다. 한국 탈은 주로 일상의 이름 없는 인물들을 형상화한다. 여기에 풍자로 가득 찬 일탈의 해학은 그들의 얼굴을 기괴한 모습으로 일그러트리며, 그 자체로서 권력자 등 비판의 대상을 조롱한다. 하지만 흉측하게만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변형시켜내는 재치의 한국적 미학 또한 찾아볼 수 있다.
일상의 고통을 웃음으로써 극복해 내고, 대립하는 모든 등장인물은 물론, 관객까지도 함께 춤으로써 화합하는 장을 만들어 내는 ‘탈춤’은 한국의 ‘흥’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이번 전시는 그 ‘탈춤’의 탈을 통해 한국인의 진짜 ‘얼굴’, 그 정신세계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더불어 전시되는 모든 작품들은 한국의 전통종이, 한지(Hanji)로 제작하여 그 의미가 한층 깊다. 서기 742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또한 한지로 만들어 졌을 정도로, 한지는 세계적으로 그 특유의 통기성을 바탕으로 한 내구성과 보존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와 같은 장점에 이탈리아 국립기록유산보존복원중앙연구소(ICPAL)는 2016년과 2018년 자국 문화재 5점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한지를 이용하였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또한 작품 복원을 위해 2016년부터 한지를 수입하여 활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특징으로 인해 한지는 한국 전통가옥의 창호에 널리 사용되어 왔다. 내구성에 더해 빛과 공기, 그리고 습도까지도 조절하는 한지의 기능성이 쾌적한 실내 환경을 조성하여 주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은은하게 빛을 투과하는 한지의 특성을 적극 활용하여, 한국 ‘탈’의 독특한 색감을 더욱 돋보이게 할 것이다.
1. 한 : 간단히 ‘슬픔’의 감정으로 번역되곤 하지만, ‘한’은 순간의 감정적 슬픔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분노, 억울함, 아쉬움 등의 감정이 함께 뒤섞여 오랜 시간 해소되지 못한,
한국인의 독특한 심정이라 할 수 있다.
2. 방상시 :장례나 역귀를 쫓는 의식에서 사용된 탈. 본래 얼굴에 쓰는 것이 아니라 크기가 매우 크며(현재 남아 있는 유물은 높이 72cm 너비 76.5cm에 달하는 나무 탈이다), 장례 행렬에
맨앞에 위치하여 귀신을 쫓아버리는 역할을 한다. 눈이 네 개인 것이 특징이나, 민간에서는 주로 눈 두 개의 ‘기’ 탈을 사용했다.
3. 한지 : 한지(韓紙: 韓=한국, 紙=종이)*는 한국 전통 방식으로 제조한 닥나무로 만든 종이를 의미
4. 무구정광대다라니경 : 불교 경전
5. ICPAL : Istituto Centrale per la Patologia degli Archivi e del Libro
* 전시기간 및 오픈시간 : https://pl.korean-culture.org/ko/986/board/738/read/139191